덕수궁 소개 및 관광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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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은 조선 후기에 궁궐로 사용되었지만 구한말의 아픈 역사를 지나며 전통 건축과 서양식 건축이 함께 남아 있는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조선의 마지막 황궁인 덕수궁에 대해 소개하고 관광 정보를 알려드립니다.

 

 

목차

     

    덕수궁 소개

    덕수궁은 원래 조선 9대 임금인 성종의 형 월산대군이 1454년부터 1488년까지 머무르던 사저였습니다. 임진왜란 때 함흥으로 피란을 갔던 선조가 돌아와 불에 타버린 궁궐 대신 월산대군가를 임시 행궁으로 사용하면서 정동행궁이라 불렸고 선조 26년(1593년)부터 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이 즉위 3년(1611년)에 이곳을 경운궁이라 이름 붙이고 1615년 재건된 창경궁으로 어가를 옮길 때까지 왕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선조의 왕비인 인목대비가 경운궁으로 쫓겨 나와 있을 때는 광해군은 이곳을 서궁이라 낮춰 부르게 하기도 했습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고 270년 동안 별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후에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을 감행한 후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고종황제의 장수를 빈다'는 뜻의 덕수궁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국호를 대한제국이라 함으로써 덕수궁은 우리나라 최초의 황궁이 되었습니다. 덕수궁은 다른 고궁들과 달리 서양식 건축물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1904년 큰 불이 나 건물 대부분이 불에 타 없어지고 서양식 건물들이 지어지면서 궁궐이 원래 갖고 있던 조화는 사라지게 됐습니다. 특히 남쪽에 있는 인화문이 원래 덕수궁의 정문이었으나 다시 재건하면서 동쪽에 있는 대안문을 정문으로 삼고 대한문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습니다. 1919년 1월 22일 고종이 일제에 의해 덕수궁 함녕전에서 독살당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3·1운동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고종이 승하한 이후 일제는 기다렸다는 듯이 덕수궁 터를 훼손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전각을 철거하였고 궁궐 터를 매각하거나 축소하여 공원으로 만들기까지 했습니다. 현재 덕수궁에는 중화전, 준명당, 석어당 등 전통적인 한옥 전각들과 석조전, 정관헌 등 서양식 건물들이 한 곳에 자리합니다. 

    중화전(보물 제819호)은 조선왕조 최후의 궁궐 정전이며 중화전에서 시계방향으로 석조전, 즉조당, 석어당, 함녕전 등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정관헌과 석조전은 모두 외국인 건축가가 지은 것입니다. 아관파천 때 처음으로 커피를 마신 고종은 커피를 즐겨 마셨는데 정관헌은 고종이 외국 외교관들과 커피를 마시던 곳입니다. 석조전은 유럽식 정원과 분수대를 갖추고 있습니다. 석조전 본관은 일제강점기에 근대일본미술진열관으로 사용되었으며 광복 후에 미소공동위원회의 회담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석조전 서관은 광복 후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덕수궁미술관이 되었습니다. 즉조당은 광해군과 인조가 즉위했던 곳이고 석어당은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유폐시킨 곳이자 인조반정의 무대였던 곳입니다. 함녕전(보물 제820호)은 1897년에 건축하여 고종황제가 머무르던 건물로 1904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복원하였습니다. 1919년에 고종이 승하한 곳입니다.

     

     

    관광 정보

    덕수궁의 주소는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99 입니다. 남산 3호 터널에서 시청 앞을 지나면 덕수궁이 나오며 주차장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대중교통 이용 시 지하철 1·2호선 시청역에서 내려 2번 출구나 12번 출구로 나오시면 됩니다. 입장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이며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입니다. 오후 9시까지 야간 개방을 합니다. 입장료는 1,000원이며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입니다.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대한문에서는 매일 수문장 교대식이 열립니다. 이 행사는 한국 전통 궁중문화 재현행사로 영국왕실의 근위병 교대의식과 비견됩니다. 하루 세 차례 30분씩 재현됩니다. 덕수궁에는 110여 종 1만 여 그루의 나무가 있습니다. 봄에는 살구꽃과 모란꽃이 만개해 낮에 산책하기 좋습니다. 은행잎이 흩날리는 가을에는 특히 덕수궁 돌담길이 더욱 운치 있게 변합니다. 덕수궁 돌담길은 원래 덕수궁의 일부였으나 일제에 의해 길이 생기면서 궁궐의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습니다. 근대식 건물이 들어서 있는 덕수궁 돌담길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 하나로 꼽힙니다. 덕수궁 돌담길에서 정동길로 이어지는 길은 유명한 데이트 명소입니다. 그 사이에 중명전과 (구)러시아공사관이 있습니다. 수옥헌이라 불리던 중명전은 조선시대 황제가 도서관으로 쓰던 곳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도서관 건물입니다. 이 건물 역시 처음에는 덕수궁 궁궐 안에 있었습니다. 아관파천 이후 고종이 중명전에서 집무를 보았으며 1905년 을사늑약이 불법 체결된 곳이자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이 특사를 파견한 곳입니다. 중명전은 독립문과 덕수궁 정관헌과 함께 러시아 건축가가 설계한 것으로 현관에 러시아식 타일이 깔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현재는 이곳에서 을사늑약 당시의 기록 등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구)러시아공사관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있을 당시 고종이 세자와 함께 피신을 했던 곳입니다.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13층에 있는 '정동전망대'에서 덕수궁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이용료는 무료이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합니다. 작은 카페도 있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구경하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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